70년대부터 송두율 선생과 친분관계에 있으면서 지난해 가을부터 일본에서 그의 무죄석방을 위해 활동해 온 이또 나리히꼬(伊藤成彦, 츄오대학 명예교수)는 “송두율 교수는 전형적인 학자일 뿐 정치가가 아니다”며 “그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면 북에 가서 편안하게 살지 뭐하러 독일에서 살았겠느냐”고 강조했다.

황장엽 비서와도 오랜 친분을 갖는 이또 교수는 황장엽 비서 망명 직전 일본에서 만난 황 비서의 모습, 일본 보수우익화, 미국 대선의 중요성, 주일미군 철수운동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털어놨다.

              송두율 교수 무죄석방 일본 대책위 대표 이토 나리히꼬 교수

1931년 일본의 이시가와(石川)현 출신으로 도쿄대학에서 독일어와 국제관계, 사회운동 사상사를 공부하였으며 츄오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현재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국제협회대표로 문예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지난 5월 4일 도쿄 오차노미즈에서 이또 교수를 만났다.

-먼저 송두율 선생과 인연은

△개인적으로 70년대부터 독일에서 윤이상, 송두율 선생 등과 친분이 있었다. 독일에 갈 때면 이들을 만나곤 했다. 나는 특히 한국인들과 인연이 많아서 90년대 초 황석영이 북에 갔다가 일본에 잠시 왔을 때 만난 적이 있고 그를 다시 윤이상이 있던 독일에 보내어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2년 간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또 그가 쓴 <오래된 정원>을 일본어로 번역하도록 번역가 아오야기씨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송두율 교수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내가 아는 송두율은 정치가가 아니다. 그는 절대로 정치가가 될 수 없는 전형적인 학자이다. 나는 그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철학자이고 북의 노동당에 입북을 위해 가입을 했다면 몰라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법원의 공식증거도 없었고 황장엽씨가 그를 후보위원이라고 증언한 것만으로 단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정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면 독일에서 어렵게 살지 않고 북으로 갔을 것이다. 실력있는 그가 정식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한국 국정원(KCIA)의 공작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고, 부인도 어렵게 도서관 사서로 일했는데, 진짜 후보위원이었다면 북에 정착했을 거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은 37년 만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귀국한 거다. 그런데 송 교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남과 북은 정상회담과 공동선언 이후 화해와 협력의 걸음이 착실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동선언의 한 축인 북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통일을 위해서도 이제 국가보안법은 철폐해야 한다.

-송두율 교수 구명운동을 한다고 들었다

△독일에서는 송 교수의 스승인 하버마스교수를 비롯한 1천명 이상이 서울지방법원에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일본에서도 윤건차 카나가와대학 교수와 내가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3백여명의 탄원서를 1월 말 서울지방법원에 보냈다. 서명자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지만 재일한국인들도 몇 사람 있었다. 주로 교수들이 많았고 목사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반대의 목소리가 판결에 반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송두율 교수가 받은 징역 7년 선고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송 교수가 조국통일을 위해 벌인 활동을 잘 알고 있다. 송 교수는 행동하는 철학자이다. 송 교수는 자신의 생애를 걸고 투쟁한 한국 민주화의 성취를 믿고 큰 희망과 포부를 안고 귀국했다. 그의 자유를 빼앗고 7년간이나 감옥에 가두어 놓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황장엽 비서와 오랜 친분

-황장엽 전 비서와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그렇다. 내가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 북을 두 번 방문했는데 모두 황장엽 비서의 초대로 갔다. 황장엽이 두 번 일본에 왔을 때도 내가 초청했다. 츄오(中央)대학 교수와 동문의 자격으로 말이다. 황장엽 비서가 츄오대학 출신이다.

-황장엽 비서는 두 번 일본에 와서 무엇을 했나

△87년 12월의 한국의 대선 무렵에 요꼬하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했던 그가 “KAL기 사건은 북이 아니라 남이 한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하더라. 당시 그는 일주일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도 외출이 제한되어 있었고, 총련에도 가지 못하고 단지 호텔과 회의장을 오가며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갔다. 공안의 감시가 심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본에 왔을 때도 역시 국제회의 때문에 와서 도쿄 신주쿠의 카이오 호텔에 머물렀다. 돌아가기 전날과 당일 아침에 만나기도 했다. 그때 그는 “그럼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더라. 그냥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는 말만 하고 헤어졌다. 그러더니 그가 중국 베이징에 가서 망명선언을 하더라. 그러니 그가 망명하기 전에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나라고 보면 된다.

-그가 왜 망명했다고 보는가

△황장엽이 망명한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잘 모르지만, 김주석 서거 이후 권력 투쟁에서 패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주석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가 죽은 다음에는 아무래도 권력의 핵심에서 밀린 것 같고 학자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내가 최근에 북에 갔을 때 과거에 있던 인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더라. 아무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권력이 이동하면서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황장엽도 그 과정에서 망명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국의 지인들은

△한국의 지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서부터 백낙청, 리영희, 강만길, 황석영, 한승헌 등이 있다. 일본에는 황석영의 <객지>를 번역한 통일 운동가 정경모 선생과도 친한 편이다. 또한 민단, 총련, 한통련 등의 간부들과도 친하다. 그런데도 내가 저술한 책은 한국에 한 권도 번역된 것이 없다. 2-3년전에 일본에서 출간한 <일본헌법 제9조>라는 책은 일본에서도 거의 유일한 전문서적이라 한국에서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 이 책은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다.

참, 송두율 교수의 책은 한국에서는 몇 권 출판되었지만 일본어판이 없어서 늘 아쉽다.

■“조미관계가 조일수교의 관건”

-그럼 화제를 돌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가 걱정인데

△2년 전부터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문제가 다시 불붙고 있다. 물론 50년 전부터 그런 논의가 있었지만 이번은 정말 걱정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참패하면 그걸로 고이즈미도 끝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아직은 부시의 향배가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뉴욕타임즈> 등이 보도하고 있는 ‘10월 위기설’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

-10월 위기설은 무엇인가

△10월에 발생할 미국의 정치경제적인 위기를 말하는데, 이라크 문제 등으로 난국을 돌파할 힘이 없는 부시정권의 몰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대선결과에 따라 일본도 위기가 발생할까

△고이즈미 정권의 미래는 아무래도 부시 정권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부시가 잘되면 고이즈미도 잘될 것이고 부시가 낙선하면 고이즈미도 임기 전에 중도하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이번 7월의 참의원 선거는 고이즈미의 자민당이 승리할 것 같다. 일단 고이즈미의 자민당 정권이 불리한 조건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말 치뤄진 3곳의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이 전승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다.

-자민당의 승리는 일본의 여야가 선명성이 부족한 때문은 아닐까

△물론 현재의 민주당과 자민당이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 자민당을 유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헌법개정 논의에 민주당도 73% 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의 자민당이 나쁘다고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도 사실은 나쁘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보다 더 심한 의원들도 있다. 차별성이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미국 역시도 최근 이념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케리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케리가 부시에게 속아서 이라크 침공을 찬성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가는 케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향후 조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미국의 대선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미국문제가 현실적인 핵심과제이다. 미국 대선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또 조일관계 개선을 위해 나는 가능하다면 북의 인사들을 자주 일본에 초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이 쉽게 변하지 않으니 북의 인사들이라도 자주 불러서 일본을 보고 느끼고 하면서 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후에 가능하다면 일본의 정재계 인사들도 평양을 자주 방문하여 그들과 대화도 하고 느끼고 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미국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조일수교협상도 사실은 조미관계가 핵심이다. 부시가 낙선하면 일본은 당연히 북과 관계개선을 하지 않고는 동북아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문제는 조미관계가 중요한 키를 잡고 있으며 조미간의 문제가 우선 해결되는 차원에서 조일수교협상도 제대로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군 철수 운동을 하는 건 그것 때문인가

△동북아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에서는 카나가와현의 요코스카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철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돌아가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미국인들 스스로 주일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북미간의 평화조약이 필수적인 조건이 되겠지만. 국가간의 교류나 협력은 군사동맹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경제적으로 평화적인 공존이념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현재 미군철수 운동의 방향은

△작년 11월 오키나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강만길 선생, 리영희 선생 등이 참가한 가운데 동북아에서 미군기지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미국과 미군기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동북아의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원인제공자가 미국인 관계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면 당연히 한반도와 일본의 문제는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반도 단독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미국의 민주당에 강력히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고 제기할 생각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화에 대한 대책은

△조일간의 관계를 보자면 과거의 보수우익보다 현재의 보수우익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후쿠다, 아베, 고이즈미, 아소 등 이들 모두가 자신의 조부, 부친들 보다 더 심한 군국주의 자들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 모두가 친미우익으로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문제가 가장 우선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동북아 문제 나아가 이라크 등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에 민주정부를 세우는 길 뿐이다. 시급한 과제는 역시 부시 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이후 이라크 철군과 일본의 보수우경화를 막는 것이며, 이와 함께 조미수교, 조일수교를 통한 평화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위한 운동이 중요하다.”

김수종 통신원 daipa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