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가 죽었다. 그는 이라크에서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미국의 부시정부를 비판하고, 한국의 이라크 병력철수와 추가파병철회를 간절히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알 자르카위>(이슬람과 성전) 그룹은 분명하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너희(한국군)는 우리 이라크를 위하여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하여 이곳에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선일씨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로 제시된 ‘한국인’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한 개체의 인간”이라는 ‘한국인’이라는 이름과 전혀 다른 차원의 한국인이다. 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명명되는 한국인은 마치 지주의 하수인인 마름이 지주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과 미국인은 동일시되고 있다. 김선일씨는 미국의 하수인인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지주가 바라보는 마름처럼, 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인은 미국인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지주가 바라보는 마름은 소작농들 중에서 나름대로 똑똑하거나 혹은 지주의 말을 잘 듣는 소작농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미국정부가 바라보는 한국(인)은 나름대로 똑똑하여 미국식 경제성장을 달성했거나, 혹은 미국의 말을 잘 듣는(소위 알아서 기는) 제 3세계 국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작동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직 지주의 시각과 미국의 시각뿐이다. 마름은 소작농들에게 지주를 이용하여 땅을 더 많이 부쳐서 부자가 되라고 충고하고, 한국은 미국을 이용하여 더 많은 경제적 부스러기를 챙기라고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의 시각이나 미국의 시각에서 벗어난 소작농이나 제 3세계의 시각이 존재한다. 소작농의 시각에서 지주도 아니면서 지주노릇을 하는 마름은 지주보다 더 나쁜 놈이고, 제 3세계의 시각에서 미국도 아니면서 미국노릇을 하는 한국은 미국보다 더 얄미운 놈들이다.
지주-반지주(소작농)의 관계는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봉건적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주의 시각과 소작농의 시각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반미(제 3세계, 혹은 이라크)의 관계는 미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미국의 시각과 이라크의 시각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봉건적 사회 속에서도 지주의 시각과 소작농의 시각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이 세계 속에서도 미국의 시각과 이라크의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봉건적 사회를 오직 지주-소작농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지주의 영토 속에 갇혀서 지주의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기는 마름의 시각일 뿐이다. 지주의 영토 밖에는 또 다른 지주도 존재하고, 소규모이지만 자작농도 있고, 지주들의 세상이 싫어서 산속으로 들어간 화전민이나 출세간의 스님들도 있었다. 마름이 지주의 시각에서 벗어날 때, 지주-소작농의 관계가 지배하는 봉건적 질서는 깨어진다. 역사적으로 봉건적 질서가 깨어졌을 때, 폭력의 역사적 수레바퀴에 깔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지주보다 마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계를 오직 미국-반미(이라크)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미국의 영토 속에 갇혀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기는 한국의 시각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미국의 시각과 다른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시각도 있고, 이라크의 시각이 아닌 남아공이나 칠레 등등의 나라들도 있다. 지난 세기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소련의 경제적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겼던 동독이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헝가리 등등의 나라들은 구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구소련보다 먼저 몰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몰락 이전에 소련 제국주의의 영토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토를 구성한 중국이나 북한, 시리아, 그리고 알제리 등등의 나라들은 구소련의 몰락과 상관없이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영토를 구성하면서 수많은 다른 나라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국가적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개인이나 국가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관계적 삶의 양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김선일씨의 죽음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한국이나 한국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이 몰락보다 먼저 몰락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주-소작농, 주인-노예, 아버지-아들, 그리고 남성-여성의 관계에서 벗어나 한 자유인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들뢰즈를 포함한 탈근대주의자들의 내재성에 대한 연구이다. 모든 개인은 관계맺음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관계의 형식을 결정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와 국가는 스스로 존재하려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한 사회의 내재성은 국가와 국가, 그리고 사회와 사회의 관계에 따라 스스로 삶의 존재양식을 변형시킨다. 소작농이나 노예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지주와 주인의 관계에 따라 저항적이고 폭력적인 삶을 선택하듯이, 한 사회와 국가의 주요한 관계에 있는 상대 사회나 국가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때, 그 대상에 대하여 똑같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송두율 교수가 북한 사회를 미국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그 자체의 내재성으로 보도록 권고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라크를 미국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이라크 자체의 근대화 과정으로 만들어진 내재성으로 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미 오늘날의 이라크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을 묵인한 당시의 미국을 우리는 비난하지 않는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느니, 차라리 대원군이나 민현황후, 혹은 동학의 정권이 지배하는 조선이 차라리 더 낳지 않았겠는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험이 없었다면 더 빨리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을 것이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스스로 변화생성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의 이라크가 그렇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한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우리 근대사에 남아있는 불세출의 영웅이 아닌가? 당시의 이토오 히로부미처럼 오늘날의 부시는 미국의 폭력과 억압 속에 있는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안중근이 영웅이듯이 이라크인들에게 알 카에다와 알 자르카위는 영웅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미국의 지배나 미국의 하수인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후세인이나 후세인보다 더 강력한 독재자가 등장해도 좋다는 것이 이라크인들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선시대의 왕보다도 더 강력한 영웅이 등장하여 식민지 조선을 악의 수렁에서 건져내길 바라듯이 오늘날의 이라크는 미제국주의 수렁에서 이라크 민중을 구원할 강력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그 비이성적인 영웅주의의 수렁에서 김선일씨와 같은 희생자를 더 이상 양산하면 안 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옛 만주국 정벌의 장교가 된 박정희와 정일권 등등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박정희와 정일권이 미국이 하수인이 되어 이라크 정벌의 장교가 되고자 한다. 그들은 살아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명령을 받고 사방이 전쟁터인 지뢰밭을 헤매는 일반 병사의 한국군인들은 살아서 되돌아 올 수가 있을까? 살아서 되돌아온들 내가 일본군 병사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라크에 출병한 미국병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 이들 한국군인들만이 아니다. 노무현은 마치 세계지도에도 없는 미국의 쉬흔 세 번째 주의 장관처럼 김선일씨가 죽든 말든 이라크 파병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은 이 때다 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지닌 <테러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테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친미냐 반미냐, 혹은 친이라크냐 반이라크냐의 세계 속으로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 한반도인들이 해결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라크인들의 문제는 이라크인들에게 맡겨야만 한다. 발을 들여놓으려면 차라리 소작농이나 노예의 편을 들어라.
폭력과 억압을 통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지속하는 한, 우리의 시각은 이러저러한 형태로 지배자의 시각이나 피지배자의 시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두 개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송두율 교수가 주장하는 어떤 텍스트나 대상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다. 이 세상이 모두 친구관계나 연인관계라면, 그 어떤 개체라도 스스로 관계를 맺고 더 나은 그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듯이, 이 세상의 사회나 국가의 관계가 모두 상호평등한 동맹관계라면, 그 어떤 사회나 국가도 스스로 관계를 맺고 더 나은 그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만물의 내재적 법칙은 “흥하고 나면 망한다”는 것이다. 옛 만주국이나 필리핀, 혹은 버마전선에서 일본군의 이름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었다. 베트남에서 미국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따이한”들이 죽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라크에서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한국인이 더 죽어야만 하는가? 주인-노예나 지주-소작농의 관계에서 벗어나 내재성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노예의 편이나 소작농의 편을 들어라!
글쓴이 장시기 글쓴날 2004-06-29 14:11:47 조회 11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과 이라크 문제
김선일씨가 죽었다. 그는 이라크에서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미국의 부시정부를 비판하고, 한국의 이라크 병력철수와 추가파병철회를 간절히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알 자르카위>(이슬람과 성전) 그룹은 분명하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너희(한국군)는 우리 이라크를 위하여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하여 이곳에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선일씨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로 제시된 ‘한국인’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한 개체의 인간”이라는 ‘한국인’이라는 이름과 전혀 다른 차원의 한국인이다. 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명명되는 한국인은 마치 지주의 하수인인 마름이 지주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과 미국인은 동일시되고 있다. 김선일씨는 미국의 하수인인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지주가 바라보는 마름처럼, 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인은 미국인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지주가 바라보는 마름은 소작농들 중에서 나름대로 똑똑하거나 혹은 지주의 말을 잘 듣는 소작농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미국정부가 바라보는 한국(인)은 나름대로 똑똑하여 미국식 경제성장을 달성했거나, 혹은 미국의 말을 잘 듣는(소위 알아서 기는) 제 3세계 국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작동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직 지주의 시각과 미국의 시각뿐이다. 마름은 소작농들에게 지주를 이용하여 땅을 더 많이 부쳐서 부자가 되라고 충고하고, 한국은 미국을 이용하여 더 많은 경제적 부스러기를 챙기라고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의 시각이나 미국의 시각에서 벗어난 소작농이나 제 3세계의 시각이 존재한다. 소작농의 시각에서 지주도 아니면서 지주노릇을 하는 마름은 지주보다 더 나쁜 놈이고, 제 3세계의 시각에서 미국도 아니면서 미국노릇을 하는 한국은 미국보다 더 얄미운 놈들이다.
지주-반지주(소작농)의 관계는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봉건적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주의 시각과 소작농의 시각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반미(제 3세계, 혹은 이라크)의 관계는 미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미국의 시각과 이라크의 시각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봉건적 사회 속에서도 지주의 시각과 소작농의 시각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이 세계 속에서도 미국의 시각과 이라크의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봉건적 사회를 오직 지주-소작농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지주의 영토 속에 갇혀서 지주의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기는 마름의 시각일 뿐이다. 지주의 영토 밖에는 또 다른 지주도 존재하고, 소규모이지만 자작농도 있고, 지주들의 세상이 싫어서 산속으로 들어간 화전민이나 출세간의 스님들도 있었다. 마름이 지주의 시각에서 벗어날 때, 지주-소작농의 관계가 지배하는 봉건적 질서는 깨어진다. 역사적으로 봉건적 질서가 깨어졌을 때, 폭력의 역사적 수레바퀴에 깔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지주보다 마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계를 오직 미국-반미(이라크)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미국의 영토 속에 갇혀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기는 한국의 시각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미국의 시각과 다른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시각도 있고, 이라크의 시각이 아닌 남아공이나 칠레 등등의 나라들도 있다. 지난 세기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제국주의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소련의 경제적 이익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만을 먹고 즐겼던 동독이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헝가리 등등의 나라들은 구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구소련보다 먼저 몰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몰락 이전에 소련 제국주의의 영토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토를 구성한 중국이나 북한, 시리아, 그리고 알제리 등등의 나라들은 구소련의 몰락과 상관없이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영토를 구성하면서 수많은 다른 나라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국가적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개인이나 국가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관계적 삶의 양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김선일씨의 죽음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한국이나 한국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이 몰락보다 먼저 몰락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주-소작농, 주인-노예, 아버지-아들, 그리고 남성-여성의 관계에서 벗어나 한 자유인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들뢰즈를 포함한 탈근대주의자들의 내재성에 대한 연구이다. 모든 개인은 관계맺음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관계의 형식을 결정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와 국가는 스스로 존재하려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한 사회의 내재성은 국가와 국가, 그리고 사회와 사회의 관계에 따라 스스로 삶의 존재양식을 변형시킨다. 소작농이나 노예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지주와 주인의 관계에 따라 저항적이고 폭력적인 삶을 선택하듯이, 한 사회와 국가의 주요한 관계에 있는 상대 사회나 국가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때, 그 대상에 대하여 똑같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송두율 교수가 북한 사회를 미국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그 자체의 내재성으로 보도록 권고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라크를 미국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이라크 자체의 근대화 과정으로 만들어진 내재성으로 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미 오늘날의 이라크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을 묵인한 당시의 미국을 우리는 비난하지 않는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느니, 차라리 대원군이나 민현황후, 혹은 동학의 정권이 지배하는 조선이 차라리 더 낳지 않았겠는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험이 없었다면 더 빨리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을 것이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스스로 변화생성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의 이라크가 그렇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한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우리 근대사에 남아있는 불세출의 영웅이 아닌가? 당시의 이토오 히로부미처럼 오늘날의 부시는 미국의 폭력과 억압 속에 있는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안중근이 영웅이듯이 이라크인들에게 알 카에다와 알 자르카위는 영웅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미국의 지배나 미국의 하수인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후세인이나 후세인보다 더 강력한 독재자가 등장해도 좋다는 것이 이라크인들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선시대의 왕보다도 더 강력한 영웅이 등장하여 식민지 조선을 악의 수렁에서 건져내길 바라듯이 오늘날의 이라크는 미제국주의 수렁에서 이라크 민중을 구원할 강력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그 비이성적인 영웅주의의 수렁에서 김선일씨와 같은 희생자를 더 이상 양산하면 안 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옛 만주국 정벌의 장교가 된 박정희와 정일권 등등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박정희와 정일권이 미국이 하수인이 되어 이라크 정벌의 장교가 되고자 한다. 그들은 살아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명령을 받고 사방이 전쟁터인 지뢰밭을 헤매는 일반 병사의 한국군인들은 살아서 되돌아 올 수가 있을까? 살아서 되돌아온들 내가 일본군 병사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라크에 출병한 미국병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 이들 한국군인들만이 아니다. 노무현은 마치 세계지도에도 없는 미국의 쉬흔 세 번째 주의 장관처럼 김선일씨가 죽든 말든 이라크 파병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은 이 때다 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지닌 <테러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테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친미냐 반미냐, 혹은 친이라크냐 반이라크냐의 세계 속으로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 한반도인들이 해결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라크인들의 문제는 이라크인들에게 맡겨야만 한다. 발을 들여놓으려면 차라리 소작농이나 노예의 편을 들어라.
폭력과 억압을 통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지속하는 한, 우리의 시각은 이러저러한 형태로 지배자의 시각이나 피지배자의 시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두 개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송두율 교수가 주장하는 어떤 텍스트나 대상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다. 이 세상이 모두 친구관계나 연인관계라면, 그 어떤 개체라도 스스로 관계를 맺고 더 나은 그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듯이, 이 세상의 사회나 국가의 관계가 모두 상호평등한 동맹관계라면, 그 어떤 사회나 국가도 스스로 관계를 맺고 더 나은 그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만물의 내재적 법칙은 “흥하고 나면 망한다”는 것이다. 옛 만주국이나 필리핀, 혹은 버마전선에서 일본군의 이름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었다. 베트남에서 미국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따이한”들이 죽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라크에서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한국인이 더 죽어야만 하는가? 주인-노예나 지주-소작농의 관계에서 벗어나 내재성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노예의 편이나 소작농의 편을 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