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없애야 ‘법치 민주’ 성장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아주 오래된 논란거리 중의 하나다. 이 말많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얼마전 우리의 최고 사법기관들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여전한 남북대치 상황’과 ‘국가안보’를 이유로 합헌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아주 이례적으로 그들의 합헌 입장이 국회의 ‘국가보안법 존폐’ 논의에 반영되기를 원한다는 암시까지 문서에 실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지난 1990년 초에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제7조 찬양·고무죄 규정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찬양·고무행위 등만 처벌한다면 합헌이라는 한정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국회는 이 결정의 취지를 받아들여 이 조항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소를 삽입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주관적 요소가 법에 첨가됐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이번 결정까지 5차례의 합헌 결정을 통해 이 조항의 정당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첨가된 국가보안법 제7조의 ‘주관적 요소’는 실제 재판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런 주관적 요소가 적극적인 의욕이나 확정적인 인식일 필요는 없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으로 족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논리로 법원은 고의가 없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있다.
헌재.대법 합헌론 문제있어
그동안 사법소극주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해야 할 말까지 아끼던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국가보안법 존속 여부에 대해서는 굳이 가치판단을 하고 나온 것에 대해서도 법 논리상 지적할 문제가 많다.
사법적 판단의 결론은 재판에 제출된 구체적 증거를 기초로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번에 국가보안법 존속의 핵심적 이유로 든 ‘북한의 남침과 그에 따른 국가안보에의 위협’은 어떠한 구체적 증거에도 기초하고 있지 않다. 사법적 판단이 구체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고 단지 가능성이나 이에 대한 막연한 국민적 불안에만 기대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인의 유세연설문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은 많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국민의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를 침해해 온 대표적 악법이다. 예를 들어, 지난 올림픽에서 유도 부문에 출전한 북한의 계순희 선수를 응원하고 칭찬한 우리 국민들의 동포애적 표현 행위들도, 찬양·고무죄 규정을 지금처럼 파행적으로 운용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한 것이 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게 된다.
폐지해도 민주체제 건재
이미 국가보안법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게 됐다. 인터넷의 발달로 공간을 초월해 휴전선 너머로까지 의사교환의 통로가 열려가고 있어, 제8조 회합·통신죄도 거의 사문화되어 버린 것이 한 예이다. 보안법이 과거 정권에 의해 정적의 제거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많았음도 지적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한, 앞으로의 정권에서 이런 악용이 재발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민주의식도 많이 높아졌으며, 북한 체제에 견줘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도 될 시점에 왔다고 믿는다. 이제 이 땅에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는 말에 동의하고 이에 현혹될 국민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우리의 값진 민주체제를 부정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북한에 조력해야 한다는 선동에 현혹될 국민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런 체제 부정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상의 내란죄, 외환죄, 이적죄 규정 등의 보완을 통해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전쟁의 뼈아픈 경험 직후에 한시적 입법의 하나로 제정되었던 국가보안법이 국민들의 여러 기본권을 침해하며 선량한 국민을 용공주의자로 모는 악습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는 훗날 우리 후손들이 2004년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했으며 성숙된 것인가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 믿는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임지봉/건국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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