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민혁명은 학문자유 실현 과정
대부분 사상가들 탄압·검열 맞서싸워
오늘의 인류문명을 있게 한 가장 직접적 동력인 근대 시민혁명은 ‘학문·사상탄압’을 철폐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됐다.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전략도 검열도 필요없다. 그런 것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대해 쓰는 방책이고 방어수단이다. 진리를 위해선 오로지 장소를 제공하라” 청교도이자 계몽사상가이기도 했던 밀턴은 1644년에 펴낸 책 <아레오파기티카>를 통해 이렇게 역설했다. 이때의 ‘장소’란 학문·사상이 토론·강연·출판 등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될 공간을 말한다. 근대는 이런 공간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면서 형성됐다. 중세적 질서와 근대적 질서의 모든 차이는 이 하나로부터 비롯된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전제권력의 표상이었다. 최초의 검열제도는 1501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창시했다. 당시 태동한 인쇄기술의 발전을 통해 기성의 카톨릭 권력을 비판하는 학문·사상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재위 15471559)는 무허가 인쇄자를 사형에 처했고, 영국도 전제왕권을 강화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재위 15581603)때 검열제를 도입했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오늘의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근대사상가들이다. <신곡>을 쓴 단테는 화형을 피해 유럽 각지를 떠돌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랫동안 교황처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다. 홉스는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리바이어던>을 썼으면서도 여기에 포함된 사회계약사상 때문에 망명의 길에 올랐다. 칸트의 종교저술은 당국에 의해 발표금지령이 내려졌고, 톨스토이의 <인생론>은 발간 즉시 발매 금지처분을 당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바스티유 감옥에서 11개월을 보내야 했고, 주권재민 공화국을 주창한 루소는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프랑스 궁정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런 탄압에 저항한 밀턴이 “(검열을 통한 학문자유의 침해는) 살아있는 지식을 멸시하는 것이고 죽은 자의 저작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국민 전체를 모욕하고 비방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학자 개인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이로부터 말미암은 국가 전체의 발전이었다.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는 “지식의 진보는 기성 권위나 이론에 대한 도전과 비판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며 “근대 시민사회의 성과 가운데 하나는 기성권위나 이론의 반대에 대한 관용과 자유를 얻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의견·사상·신앙·세계관에 대한 폭력적 금압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인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 교훈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근·현대적 세계질서 가운데 떠있는 중세의 섬이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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